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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와 닿은 삶과 혁명의 질곡

46일간의 멕시코-쿠바 여행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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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보고

2010-07-20 11시07분 임복균

7월 22일 09시 기상
이제 또 떠나야하는 날이 밝았다. 아침마다 들려오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밤을 지새며 울려 퍼지던 마리아치들의 연주소리도 이곳에 남겨두고 마야와 쿠바를 만나러 가야한다.
짐을 싼다. 남겨두고 갈 짐, 가져가야 할 짐... 짐들도 이별인건가. 배낭을 하나로 줄여 한 달을 함께할 짐들을 쑤셔 넣고 현제가 튀겨온 바나나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집을 나선다.

엽서를 띄우기 위해 우체국을 찾아가는 길. 깃발을 펼쳐들고 구호를 외치는 일단의 데모꾼들을 만난다. 현제와 말숙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고 현제가 알아본바 경찰 몇 명이 지키고 선 건물이 시의회인데 시티의 빈민지역 주민들이 빈곤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시의회 정문을 지키고 선 경찰들은 그냥 무료하게 서서 바라만보고 시위 참가자들은 깃발과 피켓을 흔들며 알아듣지 못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평화스러운 혹은 기운 없는 그들의 시위를 뒤로하고 우체국으로 향한다. 우체국조차 식민시대의 유산인 듯 지나온 역사를 온몸으로 웅변하는데 고색창연한 건물 벽에 기대어 아직도 촛불 들고 거리를 헤맬 친구들에게 편지를 쓴다. 미안함과 여행자의 까닭 없는 외로움을 담아.

그들의 시위-1

그들의 시위-2

또 다른 시위

엽서를 띄우고 옆에 있는 군사(해군)박물관에 들러 스페인 식민시대부터의 선박과 무기의 역사를 관람한다. 현제는 이미 본 것이라며 우리만 가라하여 알아듣지도 못하는 안내자의 안내를 받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올라 쫄밋대는 가슴을 달래며 다 안다는 듯 이곳저곳 흘끔대며 그들을 따라 걷는다.

그럭저럭 별 탈 없이 관람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오니 우리의 통역사 현제 놈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온통 낯선 이들만 지천으로 널렸다.
그것 참. 어디로 가야헌다나.
한참을 길 잃은 아해처럼 조바심 대며 기다리고 있으니 현제란 놈,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게 아닌가. 우리가 안내려와 찾으러 갔었다나. 이사람 저사람 물어봐도 얼굴 노란 애들은 본적이 없다고 하더란다.

다시 상봉한 우리는 알라메다 공원에 있다는 디에고 리베라 벽화 미술관으로 향한다. 공원엔 언제나처럼 이것저것 공예품을 만들어 팔고 있는 인디오 여인네와 그림을 그려 파는 이들, 한가롭게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이들. 그들의 일상을 기웃대며 공원을 지나 미술관에 들어서니 벽 전체를 딸랑 벽화 하나가 차지하고 있다. <알라메다 쎈트랄에서의 일요일 오후의 꿈>이라는 디에고 리베라의 꽤나 유명한 벽화라는데 멕시코의 역사적 인물들을 벽화로 그린 것 이란다.

여인 그리고 삶

리베라 벽화 앞에서

벽화가 있는 사진

우리는 각자 마음에 드는 인물 앞에 서서 사진 한 장씩을 찍고 박물관을 나와 환전소에 들러 환전을 하고 소데로사의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소데로사는 시티 중심가중 한곳으로 한국인들도 많이 산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구(舊) 산 알데폰소 신학교에 들러 오로쓰꼬의 벽화를 감상한다. 3층 건물인 신학교의 회랑을 따라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멕시코의 혁명의 역사와 사회상을 벽화로 표현했다. 디에고 리베라, 시께이로스와 더불어 멕시코의 3대 벽화가로 유명한 오로스꼬의 벽화는 색채가 다소 어둡고 분위기가 무겁기는 하지만 그 힘과 생명력 그리고 삶과 혁명의 질곡을 가슴에 와 닿게 표현한 것 같다.

오로스꼬-참호

미술에 문외한인 나의 눈으로는 디에고 리베라의 화려함과 밝음, 시께이로스의 딱딱함과 차가움보다 오로스꼬의 어둡고 무거운 벽화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오로스꼬의 벽화가 선물한 감동을 안고 신학교를 나와 라 엔세난샤 성당, 산토도밍고 교회를 들러 여느 성당들처럼 금박칠한 제단을 아무런 감동도 없이 구경하고 거리를 따라 타자기가 진열된 대서소 거리를 지나다 전시회장이 있기에 잠시 들르기로 한다.

‘훌리오 갈란’이라는 화가의 전시회장이라는데 복잡한 그림의 의미를 문외한이 무엇을 알겠는가. 남성과 여성으로 고정된 세상의 성에 대한 생각들을 비틀고 비튼 것 같은 그림들인데 그냥 어렵고 헷갈리기만 하다. 그런들 어쩌랴. 이왕에 들어온 것 그윽한 눈으로 가까이서 보고 멀리서 보며 제법 아는 척 구경할밖에... 정면의 거울엔 누군가의 얼굴이 그려져 있어 관람객들의 생각과 마음을 살펴보는 듯 한데 나의 허세를 다 안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에 쫓겨 서둘러 거리로 나와 집으로 향한다.

훌리오 갈란-시선

훌리오 갈란

이제는 제법 익숙하여 서울의 어느 거리처럼 느껴지는 위험하다는(?) 거리를 지나 가리발디 광장의 한편에서 도미노 게임에 열중인 아저씨들과 얘기를 나눈다. 아저씨들에게 무슨 내기를 하냐 물으니 돈 내기를 한다고 한다. 세상 어디에나 내기문화는 성행하는가 보다. 그런들 어떠랴. 우리네 사랑방 먹기뽕처럼 광장의 한편에서 벌어지는 술 한 잔 내기 게임의 소박한 재미가 그들의 팍팍한 삶에 활력이 될 수 있다면...

아저씨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와 퇴근한 끌라우디아와 저녁 겸 맥주를 한잔한다. 아홉시 버스. 아델라를 터미널에서 8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이제 나가봐야 한다. 한참 동안을 만나지 못할 고양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택시를 타고 북부 터미널로 향한다. 아델라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시간은 창창한데 대합실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오고가는 이들을 구경한다. 알아듣지 못할 말들만 대합실 구석구석 켜켜이 쌓여 가는데 기다리는 아델라는 오지 않고 살살 아랫배만 아파온다. 그냥 참아보려 했더니 안 되겠다. 몇 자 아는 단어중 하나인 화장실을 찾아가니 돈을 내야 문이 열린단다. 거금 3페소(300원)를 내고 밀어내기 한판하고 대합실로 오니 아델라와 목발 짚은 현제 친구 루벤이 도착해 있다.

또다시 볼따구 인사를 부산하게 진행하고 조금 있으니 버스를 타야 한단다.
이제 끌라우디아와 한 달간 이별이다. 끌라우디아, 루벤과 진한 볼따구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오른다. 우리가 탄 버스는 장거리를 가는 1등 버스라서 차안에 화장실도 있고 에어콘도 지나치게 빵빵하여 반드시 담요를 덮어야 잠을 청할 수 있다.

이제부터 밤을 새워 10시간을 달려가야 한다.
멕시코시티를 둘러싼 4000미터 고개를 넘어 멀리 고대 멕시코의 문화가 기다리는 비야에르모사로 간다. 에어콘 빵빵한 버스는 힘겹게 고개를 오르고 멀어져 가는 저 밑으로 끝도 없이 퍼져있는 시티의 불빛은 잘 다녀오라 깜빡이며 인사한다. 기압의 차이로 멍멍해 진 귀는 이명을 선사하고 그렇게 높고 높은 고개를 넘고 어둠에 잠긴 벌판을 지나 버스가 달린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맞이할 낯선 땅을 상상하며 꿈속으로 향한다.
덧붙임
임복균 님은 전국공무원노조 조합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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