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 09시 기상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를 뚫고 올라오는 고원의 찬 기운에 잠이 깬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마리아치들의 악기소리, 그 아저씨. 아줌니들의 이런저런 얘기소리... 일상의 온갖 소리들이 창틈으로 밀려와 멍한 정신을 깨우고 간다. 배가 고프다. 따땃헌 침대를 벗 삼아 아직도 잠에 취해있는 두 사람에게 라면이나 끓여먹자 얘기하니 반응들이 별로다. 어제의 경험을 되살려 오늘은 뭐라도 먹고 나가야겠기에 다시 한 번 물으니 현제만 먹지 않는 댄다.
혹시 하는 마음에 라면 세 개를 끓여놓고 부르니 라면냄새가 죽여줬는지 둘 다 식탁에 앉아 라면을 먹는데 안 먹는다던 현제란 녀석이 나보다 더 먹어버렸다. 안 먹는다는 녀석이 나보다 더 먹으면 먹는다고 얘기했음 어쩔뻔 혔다나. 쩝~
아침 먹고 따라 나오려는 고양이들과 생이별을 하고 지하철에서 아델라를 만나 쿠바행 항공권을 예매하러 시내로 나간다. 넓고도 넓은 거리엔 그네들의 일상이 넘쳐나는데 그들의 일상에서 소외된 우리들만 관객처럼, 이방인처럼 낯선 도시를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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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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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여유로운 쿠바 항공사 직원들을 뒤로하고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매캐한 지하의 숨결은 닫히지 않는 창문으로 쉼 없이 밀려들고 머리서 찾아온 낯 선 이들이 신기한 듯 그 아이도, 그 아줌마도 우리를 쳐다본다. 그네들의 시선 속에 우리들은 엄지잡기 놀이를 하며 2천미터 높은 땅, 그들의 대지를 뚫고 달려가는데 스쳐 지나는 역마다 가고 오는 그네들을 나는 알지 못한다. 닫히지 않는 유리창엔 수없이 그어진 철마의 역사가 숨 쉬고 벽면엔 이곳이 무슨 역이라고 알려주는 그 역을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글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친절함인가. 멕시코 벽화예술의 자취인가.
과달루페 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한낮의 열기에 숨이 턱 막혀온다. 멕시코에서 가장 크다는 과달루페 성당으로 가는 길. 포도위엔 먼 곳에서 찾아온 그들과 그녀들이 넘쳐나고, 길가엔 노점과 가게들이 사열하듯 줄지어 있다.
우선 점심을 먹고 성당을 구경하자 결정하고 가까이에 있는 먹자골목으로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어서 오라 손짓한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뭐라도 아는 것처럼 기웃대며 돌아다녀보나 내가 그 무엇을 알 수 있단 말인가. 현제 들어가는 곳으로 쫄래쫄래 따라갈밖에…
자리 잡고 앉아 언제나처럼 각자 다른 음식을 주문하고 맥주를 마신다. 라임과 맥주의 조화. 쥑인다. 한 낮의 태양이 던져준 갈증도 짜증도 저 멀리로 달아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쩌릿하게 밀려드는 시원함만 오롯이 남아 바싹마른 식도를 적셔간다. 멕시코의 맥주와 라임오렌지. 그 환상의 조화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성당의 정문을 들어서니 총을 든 경찰이 지키고 서있다.
총을 든 군인으로부터 보호받아야 지켜질 수 있는 성당이, 예수가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소칼로의 대성당에서 만났던 불쾌감을 이곳에서 다시 만난다. 과달루페 성당은 갈색의 성모(과달루페 성모)에게 봉헌된 교회인데 지진으로 인해 예전의 성당 일부가 붕괴되어 현대식 성당을 새로 짓고 그곳에 갈색의 성모 그림을 모셔두고 순례객들을 맞고 있다. 바다건너 그들의 땅으로 흘러든 의무로 우리도 성당으로 들어가 멀리서 찾아온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여 레일을 타고 흐르는데 무엇이 그리 바쁜지 자동레일 저 혼자 쉼 없이 달려 성모그림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전에 그만 내리라 재촉한다. 그네들과 레일의 재촉에 차마 버티지 못하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미사를 보는 이들, 그냥 미사를 구경하는 이들...그들의 흐름에 몸을 싣고 성당을 지나 기념품 가게에서 엄마에게 드릴 묵주와 갈색의 성모화를 사들고 성당 뒤편 언덕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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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달루페 성당-새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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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달루페성당-예전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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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색의 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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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해발 2300미터다. 내가 오른 가장 높은 땅. 그 땅에 서서 시야 끝까지 펼쳐진 멕시코시티를 만난다. 날이 맑고 스모그가 없으면 멀리 뽀뽀까떼뻬뜰 화산도 보인다는데 오늘은 날은 맑으나 스모그가 짙어 산은 없고 시티의 건물들만 저 멀리까지 벌려서 있다. 언덕을 내려와 딸라베라 타일로 지붕을 장식한 오래된 교회 앞에 앉아 우리들의 얘기를 나눈다. 갈색의 성모에 대해, 멕시코의 역사에 대해, 우리들의 여행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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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언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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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나와 뜨거운 그 거리 건너 기념품들이 지천인 노점거리를 방황하다 지하철을 타고 소칼로로 향한다. 소칼로에 도착하여 ‘국립 예술원’ 옆에 있는 아델라가 가끔 간다는 주점에 들러 맥주와 라임의 조화를 다시 한 번 만끽한다. 허름한 주점은 편안하고 익숙한 분위기를 우리에게 선사하는데 아델라의 노력 덕에 푸짐한 공짜안주가 나오니 망설임 없이 ‘한 병더’를 외친다.
늦게 합류한 끌라우디아, 아델라 친구와 한 병을 더 마시고 아델라들과 헤어져 우리는 오래된 제과점에서 빵을 사고 케익 가게에 들러 많고도 많은 케익을 구경만하고 나와 이 건물, 저 건물,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그네들의 밤거리를 걸어 집으로 향한다.
가리발디 광장엔 어제처럼, 그제처럼 마리아치들의 선율이 흐르고 그 선율에 젖어 광장을 떠도는 그네들이 넘쳐난다. 묘한 흥분으로 가득 찬 광장을 뒤로하고 우리는 구멍가게에서 맥주와 계란을 사들고 집으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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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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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예술원 앞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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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니 언제나처럼 고양이들이 반겨주고 노빨(손바닥 선인장)을 조리하여 맥주를 마신다. 현제가 맥주를 마시다 방으로 들어가 캠코더를 가지고 나오더니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야 하니 끌라우디아의 우리에 대한 느낌, 우리의 끌라우디아에 대한 느낌을 얘기하라 한다.
서로에 대한 느낌을 캠코더에 담고나니 끌아우디아가 우리 모두에게 정화의식을 해준다고 한다. 눈을 감으라 하더니 빨강양말에 넣은 계란과 약초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쓸어내린다. 계란을 먹으려고 산준 알았더니 정화의식을 해주려고 샀었던가 보다.
그렇게 온몸을 훑어낸 빨강양말에서 계란을 꺼내 물이 든 컵에 깨 넣어 그 풀리는 상태를 보고 그 사람의 몸 상태와 치료경과를 얘기해 준다. 그리고 우리 셋에게 정화의식을 하느라 피로했던지 끌라우디아가 방으로 들어가며 자신도 정화의식을 해야 하니 들어오지 말라하더니 한 참후에 나온다.
이 정화의식은 원주민들이 오랜 시절부터 행해온 민간요법의 하나라는데 기 치료의 효과가 있는 듯하다. 정말로 치료의 효과가 있어서 그런지 끌라우디아의 정성이 통해서 그런 것인지 여행이 주는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 같다.
오늘로써 쿠바에 가기 전 이집에서 자는 것도 마지막이다. 이제 한 달 후에나 여기로 오려나. 우리도 끌라우디아도 많이 아쉬워한다.
인연에 대해, 사람의 관계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아쉬움을 달래고 잠자리에 든다.
끌라우디아! 많이 고맙다. 우리의 만남과 인연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기를.
과달루페 성당 그리고 과달루페 성모
멕시코시티 북쪽 라빌라데과달루페(La Villa de Guadalupe)에 위치한 가톨릭 교회로 동정녀 마리아에 봉헌된 것이다. 2002년 로마 교황청은 중남미 지역의 대표적인 가톨릭 성지로 정식 공표하였다. 1531년 12월 동정녀 마리아가 후안디에고(Juan Diego)라는 인디언에게 두 번 현신하여 교회를 세우라고 했던 장소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현신했던 동정녀 마리아의 모습을 그린‘과달루페의 성모(Our Lady of Guadalupe)’가 성당의 중앙에 있으며 갈색의 성모 현신 이후 멕시코에서는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인디언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고 하며 후안디에고는 사후 과달루페 성당에 묻혔다.
16세기에 건축된 원래의 교회는 지반 침하로 붕괴될 위험에 처해져 1974~1976년 구 성당 옆에 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적 양식의 새로운 성당이 건축되었다. <과달루페의 성모> 원화는 새롭게 건립된 성당 건물에 보관되어 있다. 과달루페 성당은 매년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장소로 12월12일 동정녀 마리아 축일에는 수많은 신도들이 무릎으로 기어서 교회로 오르는 고행을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