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오늘은 일찍 일어나자 했는데 어제 또 늦게 자서 두 사람이 10시 30분이 넘어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제 밤엔 각자의 가정사부터 운동에 대한 애기까지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여러 가지 얘기들이 있었지만 나는 몇 가지로 정리했다.
“최소한 활동가는 오늘이 아닌 내일을 살아가야 한다”
“꿈과 이상을 포기하면 운동은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고 쉽게 지치고 포기하게 된다”
“오늘 함께 사회변혁을 얘기한 이들이 더 이상 먼 곳을 보지 않고 오늘만을(현실) 바라보며 마음에서조차 운동을 포기 했을 때 그를 이해할 수는 있으나 인정할 수는 없다. 내가 그러한 선택을 한다면 나 또한 비판을 받고 용서받지 못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비판과 스스로의 다짐과 실천 속에서 변혁에 대한 꿈과 변혁을 위한 운동이 멈추지 않는 것은 아닐까”
11시가 다 되어간다. 이제 깨우러 가야겠다.
교대로 세수를 하고 부랴부랴 집을 나선다. 아파트 앞 광장에선 언제나처럼 아이들이 뛰어놀고 가리발디 광장엔 일찍 나온 마리아치들이 서성이고 있다. 일요일 한낮의 풍경은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인 듯 그리 바쁘지 않은 일상들이 나른하게 거리를 흐른다.
오늘 오후에 현제 대학친구들이 온다고 하여 음식준비 겸 시장을 구경하러 나간다. 또다시 도로를 무단 횡단하여 그네들의 거리를 한 아름의 호기심과 한 움큼의 불안감을 벗 삼아 터덜터덜 걸어본다. 길가 누구네 담 위엔 원색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이곳이 아열대 지방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거리를 지나는 그네들의 낯선 시선은 우리들이 이방인임을 끊임없이 일깨워준다.
멕시코 시티에서 가장 크다는 시장엔 형형색색의 꽃과 과일들이 넘쳐나는데 행여나 시장바닥에 버려져 국제미아가 될까봐 과일도 먹 거리도 건성건성 훑어보며 쫄래쫄래 끌라우디아 꽁무니를 따라가기 바쁘다. 그렇게 떨어질까 두려워 흘끔대며 바라본 가게이지만 넘치고도 넘치는 과일과 먹거리들이 통로마다 가게마다 지천으로 넘쳐난다. 그냥 먹는 바나나, 굽거나 튀겨먹는 바나나, 빨간 토마토, 초록색 토마토, 노란 망고, 붉은 망고, 흐연 망고, 파파야, 오렌지, 자몽, 사과, 배, 수박... 그리고 이름도 알 수 없는 갖가지 꽃과 먹 거리들... 과일과 노빨(손바닥 선인장 잎)을 사들고 주인이 서비스로 준 자몽을 한입 베어 무니 그 시고도 상쾌한 맛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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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일 이름 맞춰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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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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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다 셔-자몽 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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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고도 복잡한 시장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와 시장본 것들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현제 친구를 마중하러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이제는 덜 낯 설은 거리를 지나 지하철역으로 향하노라니 지난밤에 이어 알콜을 친구했는지 반쯤은 정신을 놓은 그네들이 술집 벽에 기대서서 우리를 바라본다. 여기나 거기나 알콜과 친한 이들은 있게 마련이지. 나 또한 누구 못지않게 알콜과 친한 관계로 그네들의 심정을 안다는 듯 그윽한 눈길을 던져준다.
지하철역에 도착하여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까무잡잡하고 조그만 친구가 나오더니 현제를 붙잡고 울고불고 정신이 하나도 웁다. 한참이나 부둥켜안고 볼따구를 비비며 재회의 감격을 나누더니 우리에게 인사를 시키는데 이름이 아델라라고 한다. 우리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볼따구 인사를 하고 4년 만에 만난 회포를 푸느라 지들끼리 끝도 없이 조잘대는 현제와 아델라를 제껴두고 끌라우디아 뒤를 쫓아 일요시장으로 향한다.
띠앙기스라고 하는 일요시장은 옷, 악세사리, 기념품 등 온갖 잡화를 파는 노점들로 넘쳐나는데 구경하는 사람, 파는 사람, 사는 사람. 사람, 사람들... 나는 그 넘쳐나는 사람들 틈에 끼어 말도 통하지 않는데 행여 부딪쳐 시비나 붙으면 어쩌나, 말 잘하는 것들 놓치면 어쩌나 이 걱정, 저 걱정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종종대며 따라다니기 바쁘다.
아침겸 점심으로 커다란 햄버거 비슷한 빵을 사서 나눠먹자 하는데 고지대가 주는 피로에 쩔었는지, 여기저기 피워놓은 향과 연기에 취했는지 당최 먹을 맘이 안 들어 단호하게 안 먹는다고 도리질을 치고 또다시 한참을 시장판을 쏘다니다 보니 배도 고프고 영판 구경하는 재미도 적어진다. 아까 그 빵이라도 먹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지만 어쩌랴. 단호하게 도리질한 시간이 그리 멀지도 않은데 뭣좀 먹자고 얘기하자니 서푼짜리 자존심이 고개들 쳐들고 덤비니 그럴 수도 없고 그냥 허덕대며 따라다닐밖에...
시장을 헤매다보니 이젠 제법 자신감이 붙어 더디 오는 말 잘하는 것들을 앞질러 가다가 길 건너 약간은 한산한 곳으로 말숙이 가려하니 끌라우디아가 붙잡으며 그곳은 위험하니 가면 안 된다고 한다. 그 쪽은 낮에도 위험해서 현지인들도 잘 가지 않는 곳이라고 얘기하는데 눈꼽만큼 생겼던 자신감은 연기처럼 허공중에 흩어져 버리고 우린 다시 겁 많은 병아리로 돌아와 지나치는 모든 넘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종종종 말 잘하는 것들 뒤를 따를밖에...
현제만 아들 준다고 레슬링 선수 마스크를 사고 시장을 나와 가구 골목을 들러 통짜 원목으로 만든 가구를 구경한다. 이곳의 가구들은 보통 주문제작 한다는데 원목가구 인데도 그닥 비싸지 않다고 한다. 현제 왈, 사가지고 갈수만 있으면 여비는 충분히 뺄 것이라 하기에 사갈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비행기에 싣고 가면 그 값이 그 값일 것 같아 아쉬움을 접어두고 구경이나 실컷 하고 가기로 한다.
가구 골목을 지나 집에 돌아오니 15시. 배도 고프고 피곤도하여 방에 들어와 쉰다고 하고 누우니 그냥 잠이 들어 버렸다. 두런대는 소리에 잠이 깨어 거실로 나와 보니 현제 친구들(리디아와 알베르또)이 와있고 요런 저런 음식과 맥주를 마시고 있기에 나도 대충 인사를 하고 자리를 차고 앉아 음식과 맥주를 한잔하고 나니 제법 기운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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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그리고 마리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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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중에 오늘 관람할 공연얘기가 나오고 예매표를 확인하던 리디아가 날짜가 지난 것이라고 얘기한다. 현제가 다시 확인해 보더니 어제 거라고 하는데 비싼 돈 주고 샀는데 이를 어쩐다나. 어쨌건 가서 확인해 보자며 느긋한 술자리를 부랴부랴 걷어치우고 예술의 전당으로 향한다. 거리를 걸으며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가끔씩 현제를 불러 통역을 시키며 알베르또와 얘기를 하는데 자기는 축구를 엄청 좋아한다며 오늘도 클럽(조기회)에서 축구를 하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지나는 길에 나이트 비슷한 업소를 가리키며 저기가면 좋은 걸 구경할 수 있다며 다음에 함께 가잔다. 현제에게 물어보니 쇼를 하는 업소라고 하는데 남자들끼리 가는 데와 여자만 가는 데가 따로 있다고 한다. 나중에 시간나면 각자 찢어져 가보자고 얘기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예술의 전당이다. 현제가 예매표를 가지고 관리인에게 가서 사정 얘기를 하니 외국인이라고 오늘밤에 볼 수 있도록 해준다고 했단다. 그제야 한숨 놓고 나니 느긋한 술자리를 파하고 온 탓에 시간이 2시간 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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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알베르또 그리고 아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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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때울 겸 옆에 있는 알라메다 공원을 거닐며 옥수수도 사먹고, 머리띠를 만들어 팔고 있는 인디오 아줌마도 구경하고, 말 탄 경찰과 사진도 찍고, 멕시코에선 경찰을 돼지라고 부른다고 하기에 우리는 똥파리 또는 짭새라고 부른다며 한참을 경찰 욕을 하며 서로의 공감대를 확인하는 알찬 시간을 보내다 공연시간보다 쪼끔 일찍 입장해야 한다고 하여 예술의 전당으로 돌아오니 아직도 시간이 여유가 있다.
알베르또와 돌기둥에 기대앉아 들고나는 사람들의 품평회를 하면서 시간을 때우노라니 입장할 시간이 됐단다. 말숙과 나만 관람하기로 했기에 안으로 들어가 현제가 안내원에게 얘기를 하니 따라 오라하여 따라서 2층으로 올라가니 꽤 좋은 자리를 잡아주고 구경하라 한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주변을 둘러보니 외국 관광객이 태반인 것 같다.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되는데 멕시코 지역별 전통춤이 차례로 무대에서 공연된다. 화려한 의상과 조명, 현란한 춤과 경쾌한 음악, 비슷한 듯하면서 지역적 특색이 묻어나는 공연이 연이어서 펼쳐진다. 수십 명이 한데 어우러져 추는 군무는 화려 현란하고 스페인과 원주민 음악이 결합된 리듬은 경쾌하고 힘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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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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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음악에 빠져 2시간 가까운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돈이 아까비지 않다고 얘기하며 밖으로 나오니 다른 친구들은 없고 현제와 끌라우디아만 남아 기다리고 있다. 술이라도 한잔하려고 했더니. 쩝. 그럴 줄 알았으면 제대로 인사나 할 것을. 언제 다시 볼 수 있다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가리발디광장으로 이동하여 엊그제 못 마신 뿔께를 마시러 광장 옆 조그만 술집으로 들어간다. 꽤 오래된 술집이라 하는데 선술집처럼 조그맣고 정겨운데 벽면에 그 역사를 자랑하듯 오래된 사진이 걸려있고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내 하나와 애정 깊음을 자랑하고 있는 나이 지긋한 한 쌍의 연인이 앉아 있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아 광장을 건너온 마리아치들의 음악을 들으며 따꼬를 안주로 뿔께를 마신다. 뿔께는 텁텁하고 달착지근한데 커피, 땅콩 등 첨가물에 따라 맛이 틀리며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것은 냄새가 더 많이 나서 처음 마시기엔 좀 어렵다고 한다. 혼자서 음악에 장단을 맞추며 술을 마시던 사내가 옆 자리에서 애정을 뽐내는 연인들을 샘하는지 노래기계에 동전을 넣고 노래를 듣는데 그러거니 나이 지긋한 남녀는 서로의 애정 깊음을 확인하기에 바쁘기만 하다.
끌라우디아도 노래를 들으려 하나 그 사내 기계 앞에서 떠날 줄 모르고 계속해서 듣고 또 듣기만 하니 우리도 그냥 마시고 또 마시기만 할 뿐... 애정 깊은 지긋한 연인도 떠나고 노래듣던 외로운 사내도 그들 따라 떠나고 끌라우디아가 신청한 노래를 들으며 밤과 술을 벗 삼아 우리 넷이 조그만 술집을 전세내고 앉아 있다가 떠난 그네들이 오히려 그리워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리아치들의 음악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