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오전 10시 넘어 일어났다. 간밤의 음주는 숙취를 아침까지 넘겨주고, 그 속을 달래려 가지고 간 신라면을 끓여 먹으며 해장을 대신한다. 멕시코 음식에도 고추소스가 많이 들어가고 어떤 고추는 우리 고추보다도 맵길래 모두 잘 먹을 줄 알았더니 헤수스랑은 무척 맵다며 땀을 삐질 댄다. 아마도 멕시코는 고추를 소스 형태로 음식에 첨가하여 먹기 때문에 직접적인 매운 맛은 우리처럼 익숙하진 않은가 보다. 그래도 남길 줄 알았더니 식식대며 다 먹는다.
아침을 먹고 헤수스 내외는 돌아가고 우리는 다시 또 쉬다가 오후 2시경 가리발디 광장을 지나 우리도 남들처럼 도로 양쪽을 훑어보고 잽싸게 무단횡단을 하여 도로 중앙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땅이 넓어 그런지 중앙 분리지역도, 인도도 넓기만 하다. 한참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인류학 박물관으로 향한다. 멕시코에서 버스는 처음 타보는데 조금 낡고 지저분하다. 여행책자나 여행기에서 버스는 위험하다는 글을 많이 봐서 나름 긴장을 하고 주의를 했는데 그닥 위험을 느끼지는 못했다. 뭐 어쨌든 타 볼만은 하다.
차뿔떼펙 공원 입구에서 버스를 내려 우리도 사람들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공원엔 사람들이 넘쳐나고 길가엔 과일을 파는 사람, 공예품을 파는 사람, 간단한 음식을 파는 사람 등 노점상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고 한국의 화원에서 봤던 화초들과 이름 모를 원색의 꽃이 만발한 나무들, 그리고 낯설게 키가 큰 선인장들은 그냥 길가에 심어져 우리에게 인사하고 있다.
어제마신 술의 후유증과 뜨거운 햇살의 공격, 그리고 고원지대의 낯선 기압과 공기는 산에 오르는 피로를 선사하고 마음보다 먼저 그 피로를 느낀 허약한 육체의 호소에 우리는 길가에서 파는 모듬 과일을 사들고 볼라도르 공연을 보러간다.
볼라도르는 하늘과 대화하고 태양을 숭배하면서 풍요를 기원하는 나우아와 또또낙의 고대 제례의식으로 남자 5명이 줄이 매달린 30m 높이의 장대에 올라가 1명은 꼭대기의 좁은 무대에서 드럼과 갈대피리를 연주하고 4명이 줄에 매달려 각자 장대를 중심으로 13바퀴씩 돌아 모두 52바퀴를 돈후 땅에 내려오는 공연으로 피리 부는 사람이 태양신을 상징하며 13은 마야에서 행운의 숫자를 뜻하고 52는 우리의 육십갑자처럼 마야달력의 52년 주기를 나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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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라도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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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라도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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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으로 가보니 까마득히 높은 철 기둥만 서있고 공연은 하지 않는다. 시간을 잘 맞춰야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벌써 끝났는지 몰라 주변에서 장사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고 한다. 잠시 과일을 먹으며 기다리고 있으니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은 이들 6명이 오고 장대 주변을 북과 피리소리에 맞춰 돌더니 한 명씩 차례로 장대 꼭대기로 올라간다.
오늘 공연은 4명이 하는지 4명만 장대 꼭대기에 올라가고 2명은 밑에서 대기한다. 4명이 모두 꼭대기에 올라간 후 4각의 가로대에 한명씩 앉아 장대에 줄을 감고 그 끝에 매듭을 만들어 발목을 묶고 장대를 돌아가며 내려오는데 1명은 피리를 불며 내려오고 나머지 3명은 양팔을 벌리고 천천히 돌며 내려왔다. 공연이 끝난 후 그들에게 물어보니 베라크루스에서 왔는데 2팀이 교대로 공연하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공연장만 만들어주고 그 밖의 지원은 없다고 한다. 공연을 관람한 관광객들이 성의껏 던져주는 관람료에 의존한다고 하니 참 삶이 팍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연이 끝나고 인류학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호수가 벤치에 앉아 물놀이 기구를 타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각자의 멕시코를 느껴본다. 공원 곳곳에는 뜨거운 태양을 잊고 이런 저런 공연을 하는 이들이 많기도 하다. 뜨거운 태양도 고원의 숨찬 대기도 삶에 대한 의지와 생활의 강요를 이겨낼 수는 없는 것인가 보다.
인류학 박물관으로 이동하여 말숙과 나만 표를 사고 현제는 옛날 학생증이 있다며 지금도 무료입장이 가능한지 알아본다고 건물 안에 있는 사무실을 찾아 떠나간다. 공짜를 찾아 떠나간 현제를 기다리느라 계단 난간에 앉았더니 경비가 다가와서 앉으면 안 된다고 하니 뭐 별수 있나 뻘쭘하게 통로에 서서 기다릴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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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학 박물관-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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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늦게 온 이들도 다 들어가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현제는 오지 않고 아랫배까지 살살 아파오니 어이해야 한단 말인가? 할 줄 아는 몇 마디 말과 유창한 육체언어를 통해 기념품 가게 옆에 있는 화장실을 알아내 가슴가득 뿌듯함을 안고 크~은 일을 보고오니 현제는 이미 다른 곳으로 해서 입장을 했단다. 이런 증말! 얘기 좀 하지. 무심한 넘.
안으로 들어가니 생명의 나무를 상징하는 커다란 철 기둥에 사각형의 지붕을 올려놓은 구조물이 중앙에 설치되어 있고 ㅁ자형 건물의 1층엔 지역별, 시대별 문명과 유적,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2층엔 식민이후에서 현대까지의 생활상과 민족학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오른쪽 전시실엔 전고전기 유적부터 떼오띠우아깐, 뚤라의 유물과 유적들이 실내. 외를 오가며 전시되어 있다. 인류학 박물관을 모두 관람하면 마야. 아즈텍 문화를 넘어 멕시코 지역의 고대문화를 모두 볼 수 있으며 유적지를 직접 가기 전에 이곳에서 유물. 유적을 미리 만나며 사전 지식을 쌓고 가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이거야 원. 너무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다.
정면엔 박물관에서 가장 큰 화랑으로 아즈텍 홀을 별도로 꾸며놨는데 이곳엔 템플로 마요르에서 발굴된 아즈텍 세계의 시작과 끝을 설명한 태양석을 비롯하여 템플로 마요르 모형, 아즈텍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즈텍 홀을 나와 잠시 중앙 광장의 연못가 난간에 앉아 멕시코 역사에 대해, 여행에 대해 얘기를 한다. 왼쪽 화랑엔 오아하까 지방의 고원 유적인 몬떼알반과 빨렝께의 마야 유적, 올멕의 거대 두상이 전시되어 있다. 인간의 짧은 생애로는 다 헤아리기도 힘든 그 많은 날들의 흔적을 단 몇 시간 만에 둘러보고 이해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시도인지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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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학 박물관-생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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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학 박물관-태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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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천 년을 오가며 수많은 유적과 유물을 둘러봤지만 전시실을 나오자마자 머릿속엔 거대두상, 태양석 등 몇 가지만 떠오를 뿐 모든 것은 오히려 뒤죽박죽 희미하기만 하다. 오늘 만났던 그날의 흔적들을 다시 그들의 땅에서 직접 만나면 뒤죽박죽 희미한 모습들이 또렷해지기를 기원하며 시간이 너무 지나 2층은 다음에 보기로 하고 입구에 맡겨놓은 짐을 찾아들고 박물관을 나선다. 박물관을 나오니 벌써 18시가 넘었다. 오늘 먹은 것이 라면으로 해장하고 과일과 간단한 군것질을 한 것이 전부인지라 모두 배가고파 노점에서 또르따(빵에 과일과 쏘세지, 햄, 치즈 등을 넣은 것)를 사들고 공원의 나무그늘에 앉아 늦은 점심을 대신하고 공원 산책에 나선다.
공원 곳곳에선 애나 어른이나 끌어안고 뽀뽀하는 쌍쌍들이 널려있고 아직은 그들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관계로 애꿎은 나무와 꽃들만 바라보며 공원을 걷노라니 거의 눕는 자세가 나오는 의자가 있어 누워서 쉬어볼까 했더니 그 냥반들, 쌍쌍이 편안한 자세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도대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어느 아저씨 혼자 누워있는 한쪽 의자에 교대로 누워보기로 하고 나 먼저 누워 나뭇잎 사이로 흐르는 구름을 보고 있으니 내가 하늘에 빠진 듯 세상은 없고 나와 나무 그리고 하늘과 구름만이 있는 것 같다. 계속 그 여유와 한가함을 느끼고 싶으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그네들의 강력한 눈길과 서성이는 발자국 소리에 쫓겨 자리를 양보하고 홀로 공원을 어슬렁거린다.
행여 길을 잃을까 멀리 가지도 못하고 여기저기 풀밭에, 의자에 엉겨 붙은 그네들을 빤히 바라보기도 민망하여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이 나무, 저 꽃잎을 만져도 보고 눈을 들이대고 관찰도하며 뭔가를 아는 척 시간을 때우노라니 괜시리 그 편하고 여유롭던 의자가 미워지고 부둥켜안은 그네들이 얄미워진다.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심통을 부릴 수도 없어 일어날 줄 모르는 일행을 향해 헛기침과 터덕대는 발걸음으로 말없는 시위를 해본다.
누구에겐 느리게 흐르고 누구에겐 빠르게 흐른 불공평한 시간도 가고 레포르마 거리를 걸어 집으로 향한다. 현대 미술관 앞거리엔 화가와 그림을 설명하는 시설물(세종문화회관 앞에 설치되었던 사진들과 비슷)이 설치되어 있고 나는 환타지 같은 그림을 보며 꽤나 그림을 안다는 듯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제대로 읽을 줄도 모르면서 화제(畵題)를 읽는다고 시간을 죽이며 터덕터덕 길을 간다. 차도에 면한 레포르마 거리의 넓은 포도에는 각양각색의 의자들이 각자의 특색 있는 모습을 자랑하며 우리의 시선을 끄는데 그 의자들엔 쌍쌍들이 이미 자리 잡고 앉아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고 있으니 모든 의자들에 앉아보자는 애초의 계획은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폐기처분하고 그들의 애정을 함께 확인 해주는 것으로 대신하며 거리를 간다. 이곳에선 동성애자들도 거리의 의자에 앉아 애정을 표현하고 있어 나야 보기 민망했지만 성에 대해서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게 자유스러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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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그림-아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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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 중앙에 있는 독립기념탑에 들려 사진을 찍다가 한번쯤은 셋이 함께 찍자하여 옆에 애인과 함께 앉아있는 남자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했더니 애인을 버려두고 벌떡 일어나 사진을 찍어준다. 사진실력은 별로인 듯 자꾸만 우리가 다 들어가지 않는다고 앞으로 왔다 뒤로 갔다 한참을 씨름한다. 사진을 찍어주고 우리에게 오더니 무지하게 많은 질문을 하는데 현제가 열씨미 대답하고 우리는 구경만 했는데 ‘어디서 왔느냐, 어디어디 갔냐, 멕시코가 어떠냐’ 등등 참 궁금한 것도 많고 말도 많으나 마니마니 친절하고 유쾌하다. 이방인에 대해 벽은 거의 없고 호기심은 왕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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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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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서 예쁜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남자들이 사진을 찍기에 결혼한 신혼부부인줄 알았더니 성년식을 한 친구들이라고 한다. 멕시코에서는 만 15세에 성년식을 하는데 돈이 있건 없건 기본 300만 원 이상을 투자하여 행사를 치른다고 한다. 아마도 마야의 성년식 전통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멕시코의 성년식은 평생에 가장 큰 행사라고 하는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케익을 준비해주는 대부, 의상을 준비해주는 대부 등이 따로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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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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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탑에서 집까지 가는 길도 온 만큼 가야한다고 하기에 힘도 들고 시간도 늦어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온다. 집 앞 가게에서 맥주를 사들고 들어가니 끌라우디아도 돌아와 있다.
내가 가져간 고추장과 멕시코 고추 그리고 무지하게 신 라임을 안주로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오는 길에 원주민들의 나체시위를 목격했는데 끌라우디아에게 물어보니 tv나 신문 등에 나오지 않아 내용을 모른다고 한다. 현제 얘기로는 차에 써있는 구호를 보면 정부가 약속한 것을 지키라고 시위를 하는 것 같다고 한다. 끌라우디아는 피곤하다며 먼저 들어가서 자고 우리는 맥주를 더 마시며 살아온 얘기, 운동에 대한 얘기들을 하다 보니 오늘도 2시가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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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체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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