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7월은 故 문송면 군이 15세의 어린 나이에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달이다. 매년 7월에는 문송면 군의 추모제가 열리고 있고, 올해 20주기를 맞았다. 미디어충청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고자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암흑기를 넘어 산재추방운동으로
식민지하에서 노동자들은 일제와 자본에 의한 탄압과 감시 및 민족적 차별 및 무지를 미끼로 한 착취에 시달리며, 열악한 작업환경과 비참한 생활 상태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었다. 이후 반공을 국시로 했던 이승만, 개발독재라 불리는 박정희 시대에는 노동조합이라는 말만 꺼내도 빨갱이로 매도당하며 장시간노동, 사회적 병영통제 속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받았다.
노동운동에 있어서 산업안전보건활동은 노동운동의 초기에 장시간 노동, 열악한 작업조건 등에 대한 인식과 대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산업재해(이하 ‘산재’)의 원인에 대한 구조적 인식과 노동자들이 적극적인 해결노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초기 노동자들의 투쟁은 주로 산재피해노동자를 중심으로 생존권 확보투쟁이 주를 이루었으며 이러한 투쟁에는 산재문제에 관심을 가진 보건 의료인들과 전문단체들의 활동이 기여한 바가 컸다.
이 시기 산재노동자 경인국도 가두시위(87년 근로복지공사 중앙병원 산재노동자를 중심으로 생존권확보투쟁 전개), 산재환자에 대한 회사와 병원 측의 비인간적인 대우에 항거하여 투신자살한 김성애 동지,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집단중독 사태, 15세의 꽃다운 나이에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군 투쟁 등을 계기로 87년 산재노동자연맹출범, 88년 산재노동자회결성, 90년 10월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가 창립되었다.
노동조합이 주체로 서기 시작하다
87~89년 민주노조건설 투쟁과 함께
87년 7․8․9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활동을 시작한다. 산재가 발생한 후 사후처리에만 매달리던 활동에서 벗어나 산재피해자의 복지와 산재예방을 위한 활동으로 확대되었고, 노동조합은 그 주체가 되어갔다.
부천경원세기, 신광기업, 세원, 나우정밀, 슈어프러덕츠등의 단위사업장 환경개선 및 직업병 인정투쟁이 있었고 구로지역, 마창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적 연대활동이 구체적으로 모색되기 시작했다. 대우조선, 대우자동차, 풍산금속 등의 대공장에서도 산재환자를 중심으로 한 조직을 건설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89년 노동법 개정투쟁시기에 지역, 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와 보건의료단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연대하여 산업안전보건법 개정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90년 전노협 건설이후, 지역적 연대투쟁이 활발해지다
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노협’)가 건설되고 91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하기 시작했으며 사업장에서 산업안전보건부의 설치가 확산되면서 지역연대활동이 본격화되었다. 92년 4월 사안별 공동대응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지역․그룹․업종의 산업안전(이하 ‘산안’) 담당자들이 참여하는 “전국산업안전부장단회의”가 개최되었고, 94년에는 자동차․조선․금속 업종별 교육사업을 진행하여 그 성과로 조선업종과 자동차업종의 산업안전보건부 모임을 추진, 95년 4월 조선업종노동조합협의회의 상경 투쟁 등 조직적 연대투쟁으로 발전해나간다.
전노협에서는 단체협약 모범안을 만들어 각 단사 단위사업장 차원으로 확대한다. 모범 단체협약안에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설치와 위상강화(단협과 동등한 효력), 산안부서의 위상강화와 현장차원의 제도(부서환경 개선위원 등) 확보, 검진제도의 개선을 위한 집단적 요구, 재해위험시 작업중지권 확보 등의 내용이 제기되었다.
정부와 자본이 각종 제도들을 후퇴시키다
정부는 제1차 산재예방 6개년 계획(91~96), 직업병 예방 종합대책(91), 산업재해 감소 특별 대책(92) 등을 제시했고, 1993년 문민정부의 등장을 전후하여 자본은 신경영전략과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며 현장의 노동통제를 다시 강화하기 시작했다. 국제 경쟁력 강화의 이름으로 각종의 기업규제완화와 노동유연화 정책들이 정부차원에서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93-94년에 들어서서는 기업의 비용절감을 통한 경제활성화라는 미명하에 무재해운동의 확산․기업활동규제완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제정․저비용 고효율 산재예방기법 보급 등의 각종 조치들이 이어졌고, 투쟁으로 확보하였던 각종 제도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대응투쟁이 진행되었는데 92년 수지절단환자의 수술기준을 정하여 산재환자에 대한 치료기회를 제한하고자했던 것에 대응하여 공대위를 구성하여 투쟁했고, 노동부의 철회답변서를 받아내었다. 또한 92년 8월 안산 의성실업에서 한길수동지가 수술을 받지 않으면 재요양을 해줄 수 없다는 병원과 노동부의 강요에 의해 수술을 받던 중 사망하면서 안산지역에 대책위가 구성되었고 안양에서 요통환자에 대한 치료제한 지침자료(요통환자에 대해 질병별 치료기간기준을 정하고 기간 내 치료가 되지 않고 수술을 시행하지 않으면 재요양을 제한)를 입수하여 전국산안부회의에서 공대위를 구성하고 투쟁을 진행했다.
IMF 경제위기를 틈탄 노동자들의 건강 위협
민주노총의 출범 이후 연맹별로 노동안전보건 담당부서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공장과 금속을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노동안전보건문제에 대해 많은 연맹들이 주요한 의제로 받아 안지 못하였다.
또한 노동안전보건에 있어서도 자본의 노동에 대한 분할 포섭전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산업안전선진화기획단의 활동을 통해 노동조합의 참여를 보장해주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 산업안전보건법의 노동조합 참여권 확대 등이 양적으로는 증가한 반면, 자본은 경제 불황과 IMF 경제위기․김대중 정권의 출범을 계기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공세를 보다 전면화 시키면서 광범위한 인력 감축과 노동강도의 강화, 불안정 고용의 확대를 통하여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했다.
IMF 경제위기의 한파 속에서 고용과 임금보전 문제에 밀려 노동자 건강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면서 자본의 일방적인 고용파괴와 임금삭감에 짓눌려 90년대 초․중반에 투쟁의 성과로 획득했던 노동조건 개선 사항과 각종 수당의 성과를 고용유지와 맞바꾸거나, 단체협약에 보장․명시된 노동조건 내용들이 거의 무력화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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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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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추방운동에서 노동안전보건운동으로
근골격계질환 대책마련, 노동강도 강화 저지투쟁 확산되다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현장의 투쟁을 복원하려는 투쟁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다. 당시 대우조선에서 시작된 근골격계질환 집단 산재 인정투쟁을 시작으로 이를 전국적 투쟁으로 발전시키고 신자유주의에 대항하여 현장의 투쟁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만들어졌다. 2002년, 2003년 골격계 질환 집단 산재인정 투쟁은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포함한 사업주의 예방 의무를 법제화하는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2004년을 경과하면서 근골격계 인정 투쟁은 성과보다 더 거센 역풍을 맞이하여 급속한 제도화와 관리의 시기로 들어섰다. 노사 합동의 근골격계 질환 예방 관리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시도되면서 사회적 합의주의에 기반해 치료 중심으로 문제의 성격을 제한하고자 한 것이다.
2004년 4월, 마산과 창원 지역 십여 개의 사업장이 참여한 ‘경남 근골격계 유해요인 지역조사단’이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대전충북지역에서도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에 대한 지역차원의 공동대응이 있었다. 이런 시도들은 이전 투쟁의 성과로 쟁취한 유해요인조사가 자본의 면죄부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보다 폭넓고 구체적인 현장의 요구와 실천을 조직하기 위한 소중한 계기였다. 그러나 2005년 들어 근로복지공단을 앞세운 공세와 경총을 필두로 한 체계적 자본의 역공이 본격화되었고, 노동안전보건운동은 수세적 국면 속에 개인중심/치료중심/담당자중심/단사중심의 한계에 갇혀 전반적인 후퇴를 겪었다.
한편 2005년도에는 집단정신직업병 문제를 여론화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집단정신직업병이 사용자의 감시와 차별에 의해 발생한 것이고, 이것이 민주노조사수와 생존권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주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노말헥산에 중독돼 다발성신경병증에 걸리는 사건이 발생하여 민주노총을 비롯한 13개 단체는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투쟁을 전개했다.
산재보상보험법의 날치기 개악
민주노총은 관계 전문가,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과 공동으로 연구하여 2005년 8월 25일 산재보상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민주노동당을 통해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논의조차 하지 않고 2006년 민주노총이 대의원대회 공식결의로 참여하지 않는 노사정위원회에서 한국노총 및 경총과의 일방적 논의를 거쳐 12월 13일 ‘43년만에 최초로 노사정합의에 의한 산재보험법 개정에 합의하였다’며 합의문을 발표하고 12월 28일 입법예고했다.
민주노총은 총파업 4대 요구 중 하나로 산재보험법 전면개혁을 내걸고 개악 저지 투쟁을 조직했으나 강력한 대응을 조직하지 못하고 개악된 산재보험법은 시행되고 말았다.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의 건설, 의제의 확대
민주노총은 2005년 1월 중앙위원회를 통하여 총연맹 및 가맹․산하조직에 노동안전보건위원회를 건설하기로 하고 2006년도에 위원회를 건설했다. 이를 통해 노동안전보건분야를 전 조직의 의제로 확장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역본부 담당자의 과도한 업무중복과 기간에 제조업 중심으로 노동안전보건활동이 전개되었던 관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등 위원회 건설은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역사를 보면 전반적으로 운동의 발전과 함께 노동자의 권리 또한 신장되어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역사 속에서 우리를 각성토록 한 것은 이윤착취가 아닌 노동자의 몸과 삶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투쟁은 주검을 두고, 건강하게 살기위해 목숨을 걸어야하는 처절한 투쟁의 과정이었다.
이제 조직 노동자의 눈, 노동조합의 눈이 아닌 착취 받고 소외당하는 비정규, 여성, 장애, 이주노동자의 눈으로 보고 심장으로 느끼는 것 그리고 실천해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