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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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노동사회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 분향소 공장으로

자결 7일째, 계속 전면파업...“노조파괴 끝장 투쟁”

2016-03-24 19시47분29초|정재은 기자
전국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등은 24일 고(故) 한광호 열사의 분향소를 병원 장례식장에서 충북 영동군에 위치한 유성기업 공장으로 옮겼다. 열사가 자결한 지 7일째, 유성기업지회 전면파업 6일째다.

한광호 열사 투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3시 유성기업 영동공장에서 7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모여 유족 및 노조 간부들은 상복을 입고 열사의 영정사진을 든 채 천천히 공장으로 행진했다.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은 선전물과 깃발 등을 들고 정문 앞에서 엄숙한 분위기로 행진단을 맞았다. 열사대책위는 행진 직후 영동공장 광장에 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노조파괴 분쇄, 민주노조 사수, 열사 추모 결의대회’를 열었다.



집회는 참가자들의 함성과 묵념으로 시작됐다. 사회자가 “열사여, 무엇이 급해서 우리를 남기고 급하게 떠나셨습니까”라고 말하자 곳곳에서 눈물이 터졌다. 함재규(전국금속노조 부위원장) 열사대책위 위원장은 “한광호 조합원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죄송하다. 우리 노동조합이 미안합니다”고 말문을 열었다. 함 위원장은 “유성기업은 6년 동안 노동조합을 죽이려고 탄압을 일삼았다. 숱하게 징계를 당하고 우울증 고위험군에 노출될 때까지 한광호 열사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겠습니까?”라면서 “이제 다시 저항을 조직하자. 현대차와 유성기업에 맞선 노조파괴에 맞서 이 야망의 시대를 반드시 끝장낼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현대자동차의 모티브가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이다. 노조를 탄압하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일거수일투족 감시하고 관리하는 게 새로운 생각이고 새로운 가능성인가?”라고 반문하며 “유성기업 노조파괴를 지시한 현대차는 열사의 죽음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민 유성기업영동지회장은 “어제 서울에 시민분향소를 차리려고 했는데 박근혜 정부와 경찰은 한 평도 안 되는 분향소마저 내주지 않았다”면서 “한광호 조합원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더 이상 살아 숨 쉴 수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노조파괴 범죄자 처벌, 유성기업 노동자 살리기 공동대책위원회’가 23일 오후 1시 서울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하려고 하자 경찰병력이 이를 원천봉쇄하고, 오후 10시30분께 천막 없이 농성하는 이곳을 침탈해 2명을 연행한 바 있다.

김 지회장은 “열사가 자결한 지 딱 일주일 됐다. 슬픔은 일주일로 족하다”면서 “이제 다음은 무엇인가? 6년 동안 노조파괴 정말로 지겹지 않은가? 열사가 노조파괴에 맞선 싸움을 이기라고 우리 발밑에 엎드렸다. 마음이 아프지만 열사를 밟고 싸워서 이기자. 이것이 열사의 유언이다”고 했다.

김정태(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장) 열사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일주일 지나 한광호 조합원의 일터로 분향소를 옮겼다. 일주일동안 ‘노동탄압 중단, 노동자를 그만 죽이라’고 했지만 이에 대해 사측은 ‘자살이다, 노동탄압이 아니다’고 답변했다”면서 “그러나 열사는 죽음으로 말했다. 노조 활동한다고 괴롭히지 말라고, 차별과 감시로 노동자를 짓밟지 말라고 명확하게 말했다”고 발언했다.

한광호 열사와 친한 동료인 유성기업 노동자 박효종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열사의 이름 석 자를 부르며 “죽을 때까지 형 이름 석 자 부끄럽지 않게 살께. 노동조합 파괴에 이제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형 몫까지 싸우고 또 싸울게”라고 열사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낭독했다.


김태종 목사는 이날 “따뜻한 봄인데 노동현장은 아직도 동토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생때같은 또 하나의 목숨이 자본의 압박에 견디지 못한고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세상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목사는 “영동공장의 분향소는 유성기업 자본을 고발하고, 결의를 다지는 약속의 장, 새 역사를 열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요청의 장이 될 것”이라고 연대 발언했다.

한광호 열사의 형인 유족 국석호(유성기업지회 조합원, 해고자) 씨는 “이제 광호는 여기 없지만 이곳에 있는 동지들과, 오랫동안 탄압받고 있는 유성기업지회 동지들과 노조파괴 끝장 싸움을 해야겠다. 노조파괴범 반드시 구속시키자”면서 연대를 요청했다.


[ 출처 : 김순자 현장기자 ]


집회는 유희종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장, 고현승 현대차지부 아산공장위원회 부의장 등의 발언이 이어졌으며, 고인의 죽음을 위로하는 진혼무 공연, 집회 참가자들의 헌화 끝에 마무리됐다. 한광호 열사의 분향소는 영동공장 관리동 공장 앞 광장에 차려졌다. 열사대책위는 △유성기업의 사죄 △재발방지 및 책임자 처벌 △노조탄압에 따른 정신건강 피해자 심리치료 △유가족 배상 △ 가학적 노무관리에 대한 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실시 △노무관리 피해에 대한 노동부 역학조사 실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유성기업 사측은 이날 공장 건물 밖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계속 생산했다.

[ 출처 : 김순자 현장기자 ]

한광호 열사 동료 박효종 씨 편지글

광호 형. 그거 알아? 형 장례식장 주변에 봄꽃이 한 아름 피었어. 그래 이제 정말 봄이 왔어. 오들오들 떨며 얼은 손을 호호 불었던 아침 출근 길 풍경도 조합 사무실 난로위에 도란도란 모여앉아서 추위를 녹이던 손길도 이제 활짝 핀 봄기운에 모두 사르르 녹아버렸어. 형 기억나? 영재랑 형이랑 나랑 매일 같이 차타고 다니면서 우리 정말 뭐가 그렇게 좋다고 깔깔대면서 붙어 다녔는지. 셋이서 노동조합 땡땡이 치고 봄에는 아무한테도 말 안하고 놀러가기로 했잖아. 이렇게 좋은 햇살도 보고 같이 기분 좋은 봄기운도 같이 느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정말 좋았을 텐데.

광호 형. 형 영정사진에도 꽃이 활짝 피었더라. 하얀 국화가 환하게 웃는 형 얼굴을 지키고 있더라. 솔직히 우리가 언제 저렇게 환하게 웃어봤는지. 언제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함박웃음을 지었는지 사실 이제 기억도 안나. 며칠째 대낮부터 속상하다며 조합원들 술이 얼큰히 채가지고는 형을 지키고 있어. 문화제때는 형님들 동생들 모두 형 영상을 보고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더라. 그런데 형 있잖아. 난 눈물도 안 나와.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 가슴 끝에 주먹만 한 게 매달려서 목줄을 타고 가슴을 후비는 것 같아. 형이 일했던 작업장은 아직 그대로인데, 때 묻은 형 작업복은 아직도 주인을 기다리는데 이제 형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난 아직 믿기지 않아.

형. 나 이제 솔직히 고백할게. 직장 폐쇄되기 몇 달 전에 나한테 둘째 놈이 생겼잖아. 그래서 겁났어. 노조 파괴되고 깡패새끼들이 현장에서 판을 치고 다니는 것도 무서웠고 이러다가 영영 회사에 돌아가지 못할까봐 두려웠어. 새끼들도 눈에 밟혔어. 나 정말 이 예기 형한테 꼭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니까 앞으로도 나를 지켜주고 같이 싸우자고 서로 외롭지 않게 서로 힘주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어렵게 다시 금속노조로 넘어왔을 때 화장실에서 형을 우연히 보았지. 형이 그랬어. “난 한번 배신한 놈들 믿지 않아.” 형이 눈을 한번 흘기고는 사라졌어. 워낙 말수도 없는 형이 내뱉은 말이라서 솔직히 더 무겁고 미안하더라. 그렇게 배신한 놈이 뭐가 그렇게 고맙다고 형은 나를 끝까지 믿어줬고 챙겨줬지. 그래서 누구보다 내가 더 아파. 형이 너무 야속해.


술 먹으면서 내가 그랬지. 형 장가 안가? 그러니까 형이 슬쩍 웃고는 “우리 엄니 아프잖아. 그런데 내가 어떻게 장가를 가.” 그래 형은 엄니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잖아. 그런데 그런 효자가 어떻게 엄니를 두고 그렇게 모진 결심을 했어. 마지막까지 엄니가 눈에 밟혀서 어떻게 그런 독한 마음을 품었는지 내가 알고 있는 광호 형이 맞나 난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43살 그렇게 모진 세월을, 청춘을 공장에 재물로 바치고 결국 이리도 황망하게 세상을 등져야 하는지 난 이해할 수가 없어.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광호 형이 회사를 관두게 할 걸. 눈 질끈 감고 우리 착한 형 제발 살려달라고 이제 괴롭히지 말라고 유시영한테 무릎 꿇고 사정이라도 할 걸 그랬어. 아버지 묘소가 보이는 양산에서 소주잔을 연거푸 들이키며 연신 줄담배를 태우면서도 혼자 결단했을 그 마지막이 얼마나 춥고 외로웠을까.

유시영도 사람일까. 돈이 주인 되는 세상에서 아무리 돈이 좋아도 어떻게 저렇게 착하디착하고 순박한 사람을 사지로 내몰 수 있을까. 누구 때문에 형이 그렇게 됐는데 그런데 그것도 부족해서 몸도 마음도 아픈 사람을 결국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겠다며 윽박지르고 협박해서 결국 형을 죽음으로 내몰았어. 그래. 저놈들은 단한순간도 우리를 사람취급하지 않았고 단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우리의 목줄을 쥐고 흔들었어. 정훈이 형도 수종이 형도 해고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징계에 고소장에 손해배상 가압류까지 미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 더 이상한 현장에서 저들은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어.

형이 죽기 전 나에게 보낸 문자. 기억해? 미안하다. 사랑한다. 형. 미안해. 외롭게 해서 미안하고 아프게 해서 또 미안해. 형. 그리고 사랑해. 나도 우리 조합원들도 모두 형을 사랑해. 그리고 잊지 않을게. 착한 바보. 한광호. 죽을 때까지 형 이름 석 자 부끄럽지 않게 살게. 노동조합 파괴에 이제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형 몫까지 싸우고 또 싸울게. 형. 사랑해 . 그리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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